• 최종편집 2024-03-28(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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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9972795_276ab37422b74f9e1dd4ce8aaa3959af_M.jpg▲ 이상이(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 제주대 교수)

대한민국은 아이들이 행복한 나라가 되어야 한다. 아이들은 우리 사회의 미래일 뿐만 아니라 한명 한명이 지금 당장 헌법상의 인권을 보장받아야 할 하나의 소중한 인격체이다. 그런데 여러 가지 이유로 많은 아이들이 차별적 환경에서 양육되고 있다. 부모의 경제사회적 지위에 따라 육아와 보육 환경이 천차만별이다. 그래서 아이들의 행복 수준은 어떤 부모를 만났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경제적 능력과 품성의 수준이 낮은 부모를 만난 아이들은 태생의 운(불운) 때문에 이후 지속적으로 불안정하고 불행한 삶을 살게 된다. 우리는 이 가운데서도 가장 심각한 불행을 아동학대에서 찾아볼 수 있다.

아동학대를 방치하는 우리 사회의 야만적 모습

서울연구원의 분석에 의하면, 2015년 서울시 아동학대 예방센터 등의 아동보호 전문기관과 112에 신고가 들어온 ‘아동학대 신고건수’는 모두 2,325건이었다. 이 중에서 현장 조사를 통해 실제 아동학대로 판단된 건수는 1,179건이었다고 한다. 서울에서만 하루 3.23건 꼴로 아동학대가 발생한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아동학대의 가해자는 친아빠(49.4%), 친엄마(31.3%) 등 친부모가 80.7%인 것으로 조사됐고, 보육교직원(3.1%)과 교원(2.7%)에 의한 가해는 비교적 미미했다. 아동학대가 이루어진 장소 역시 가정이 82.1%로 압도적으로 많았고, 학교는 3.6%, 어린이집은 2.9%에 불과했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전국적으로 아동학대 신고건수는 2014년 1만7791건이었는데, 2016년에는 2만9669건으로 늘었다. 2년 사이에 아동학대 신고건수가 약 1.7배 정도 늘어난 것이다. 아동학대로 인한 사망건수도 2014년 14건에서 2016년 36건으로 늘어났다. 2년 사이에 약 2.6배나 늘어난 것이다. 인격적으로 문제가 있는 부모들로 인한 가정 내의 아동학대와 이로 인한 아동의 사망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일이 이렇게 야만적으로 진행되면서도 고쳐지지 않고 계속되는 데는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들이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가부장적 문화이다.

가부장 문화의 특징을 크게 두 가지 정도로 살펴볼 수 있겠다. 이것을 전통적 가치를 존중하는 측면에서 좋게 보자면 처자식을 부양하고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다는 가장의 강한 책임성으로 간주할 수도 있겠는데, 실제로 이는 지금까지 가부장적 요소가 역사적으로 긴 세월 동안 인정을 받아온 부분이다. 그런데 지금은 삐뚤어진 가부장 문화가 아동학대와 가정폭력의 원인이 되고 있고, 게다가 문제의 해결을 어렵게 하고 있다. 아직도 많은 경우 가부장적 문화는 가장이 자식을 마치 자신의 소유물처럼 간주하도록 한다. 이는 부모 모두에 해당하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로 아동학대는 부모가 함께 저지르는 경우가 많다.

아동 보호의 지역 간 격차 해소를 위해 중앙정부의 책임 강화해야

아동은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라 존중받아야 할 하나의 인격체이며, 어떤 이유로든 아동에 대한 폭력인 아동학대는 잔혹한 범죄라는 국민적 인식이 확산되어야 한다. 그리고 정부의 제도적 시스템은 이런 명백한 사실을 근거로 제대로 작동해야 마땅하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아동학대의 80% 이상이 가정에서 부모에 의해 자행되고 있지만, 이후의 조치는 강력하게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법적 조치가 취해지는 경우는 많지 않고, 국가와 사회가 학대받는 아동들에게 제도적으로 양질의 보호 서비스를 제대로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절대 다수의 학대받은 아동들은 다시 원래의 학대받던 가정으로 되돌려 보내진다. 삐뚤어진 가부장적 문화마저 인정되어선 곤란하다. 그래서 지금 이런 악순환을 끊어내는 과감한 개혁이 시급한 것이다.

작년 말에 발표된 굿네이버스의 ‘아동권리지수 연구’ 결과에 의하면, 지역의 아동권리 보호 수준은 그 지역의 재정자립도와 아동복지 예산 수준 등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한다. 다시 말하자면, 각 지역의 복지 능력의 차이가 해당 지역 아동들의 권리 보호 격차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아동 권리 보호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서는 중앙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그런데 대부분의 아동복지 분야는 지방자치단체의 책임으로 되어 있다. 대도시처럼 지방정부의 재정 여건이 좋은 곳에서 태어난 아동들은 보호를 잘 받게 되고 가난한 지역에서 살아가는 아동들은 제대로 보호를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아동 권리 보호의 지역 간 불평등이 크게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중앙정부의 재정적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중앙정부가 아동 권리 보호의 지역 간 형평성을 보장해주는 조정과 지원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어느 지역에 태어났느냐에 따라 아동 권리 보호의 정도가 정해져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결국, 중앙정부의 아동복지 예산이 대폭 확대돼야 한다. 이것은 아동 보호를 통한 ‘아이들이 안전하고 행복한 나라’ 만들기의 기초가 되는 예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아동복지 예산의 비중이 매우 작다. 실제로 아동 및 가족 관련 정부 지출은 GDP 대비 1.5% 미만으로 OECD 최하위 수준이다. 2017년 아동 보호를 위한 중앙정부 예산은 236억 원에 불과하다고 한다. 이는 아동학대 신고건수가 급증하는 현실에서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다. 아동 보호를 위한 정부 지출을 크게 늘려야 한다.

보편적 보육에도 불구하고 보육 불안이 큰 이유

현대 사회에서 아이를 제대로 키우기 위해서는 많은 돈이 필요하고 각종 육아 정보나 적절한 육아 관련 지식과 교양도 필요하다는 사회적 인식이 형성돼 있다. 많은 경우, 이런 ‘육아 부담’ 때문에 아이 낳기를 주저한다. 우리나라는 2015년 현재 OECD 평균 합계출산율이 1.7인데, 우리나라는 1.24로 세계 최저 수준이다. 그런데 2016년 합계출산율은 1.17로 추락했다. 우리나라의 출산율이 이렇게 낮은 데는 아이를 키우기 어려운 여러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가령, 청년들의 고용과 소득이 불안정해서 결혼과 출산을 포기한다든지, 비정규직 저임금 일자리나 긴 노동시간 때문에, 또는 일과 가정의 양립이 어려워서 결혼과 출산을 미루거나 포기하는 것 등이 그것이다. 이런 저출산 이유들 외에도 ‘육아 부담’ 때문에 출산을 미루거나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 이런 경우에는 국가의 보편적 보육을 통해 육아 부담을 덜어줌으로써 일정하게 출산율을 높일 수 있게 된다.

영·유아 교육을 잘 받은 아이들은 성인이 되었을 때 성공할 확률이 유의하게 더 높다고 한다. 실제로 학력과 수입이 더 높고, 범죄율은 더 낮다. 그래서 영·유아 교육의 중요성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는 우리 사회에서도 어느 정도 형성돼 있다. 그렇다면, 영·유아 교육을 누가 담당하느냐, 이 문제가 중요하다. 집에서 전업주부인 엄마가 혼자 담당할 수도 있고, 보육시설에서 담당할 수도 있다. 이에 대해 나는 엄마 혼자 영·유아를 양육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은 영·유아 때부터 어린이집에서 보육 교사의 돌봄과 교육을 받으면서 다른 아이들과 함께 어울리고 교류하는 게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의욕과 자제력 같은 덕목들을 익히게 되는데, 이때 형성된 인성과 사회성은 평생의 자산이 된다. 그러므로 국가가 제공하는 보편적 보육은 모든 아이들의 기본적 권리이다.

우리나라는 2013년 3월부터 ‘보편적 보육’을 실시하고 있다. 정부 재정으로 0∼5세까지 모든 계층의 영·유아들에게 무상보육의 기회를 균등하게 보장한다. 어린이집을 이용하지 않고 부모가 영·유아를 집에서 직접 돌볼 경우에는 양육수당을 지급한다. 소득계층 구분 없이 0세는 월 20만 원, 1세는 월 15만 원, 그리고 2세부터 취학 전까지는 월 10만 원의 양육수당을 지급하고 있다. 그런데 영·유아 교육의 중요성과 보편적 보육의 교육적 의미를 감안할 때, 어린이집 이용을 포기하고 양육수당을 선택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이는 결국 영·유아기 교육의 불평등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보편주의를 달성했음에도 불구하고 보육의 질이 낮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국공립 어린이집의 비중은 2015년 12월 현재 6.2%에 불과해서 프랑스의 66%나 스웨덴의 72%에 비해 크게 낮다. 국공립 어린이집은 보육 서비스의 질이 우수하기 때문에 부모들의 선호도가 매우 높다. 급기야 어린이집 아동학대 사건에 대해 우리 사회는 CCTV 설치 의무화로 대응했다. 그런데 이는 근원적 처방이 아니다. 아동학대는 어린이집의 서비스 질이 낮다는 사실을 나타내는 여러 징후들 중의 하나일 뿐이기 때문이다.

양질의 보편적 보육은 아동의 권리이자 성장을 위한 투자다

양질의 보편적 보육이 실현되려면 보육시설의 공공성이 높아져야 한다. 국공립 어린이집의 비중이 중장기적으로 30% 수준에 도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서울시는 최근 수년간의 노력으로 국공립 어린이집 비중을 크게 높였다. 이 일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 셈이다. 이제 중앙정부가 적극 나서야 한다. 그리고 민간 어린이집의 질을 높이려는 정부의 노력도 더 많이 요구된다. 그리고 영·유아 교육의 중요성을 감안해서 보육 교사의 질적 수준을 높이고 자긍심과 사기를 높여주는 조치가 필요하다.

어린이집의 일상을 CCTV로 감시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다. 우리나라 어린이집의 서비스 질이 낮은 것은 근본적으로는 보육 교사의 처우와 근무 환경이 열악하기 때문이다. 아동 대비 보육 교사의 수는 OECD 평균의 절반도 안 되고, 임금도 최저임금에 가까울 만큼 낮다. 이런 상태를 방치한 채 양질의 보육과 공공부문의 좋은 일자리를 거론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장차 보육 교사가 초등학교 교사처럼 좋은 일자리가 되도록 정부가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경제학적 평가를 보더라도 6세 이전의 교육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사실이 여러 연구들을 통해 이미 입증됐다. 게다가 보육 교사는 여성 친화적인 양질의 일자리로 거듭날 수 있다. 결국, 정부의 과감한 재정 투자가 필요하다. 그리고 양질의 보편적 보육은 인적 자본과 사회적 자본을 확충하는 선제적 투자다. 어린이집을 통한 보편적 보육은 ‘육아 부담’을 덜어줌으로써 엄마들이 경력단절 없이 일을 하거나 취업준비 또는 자아실현을 위한 사회적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해서 경제 성장에 기여한다. 뿐만 아니라 보편적 무상보육으로 인해 늘어난 어린이집 일자리는 정부의 정책적 의지에 따라 얼마든지 양질의 사회서비스 일자리가 될 수 있는데, 이것도 경제 성장과 직결되는 것이다.

아동수당도 없는 나라에서 저출산은 이미 예고된 것이다

1942년 《베버리지 보고서》에서 아동수당이 제안된 이후 실제로 영국에서 보편주의 원칙의 아동수당이 실현되었다. 1945년 7월 총선에서 압승한 영국 노동당 정부는 1945년 가족수당법을 제정했고, 1946년 16세 미만의 둘째 아이를 가진 모든 가정에 아동수당을 제공했다. 그리고 1977년부터 첫째를 포함한 16세 미만의 모든 아동들에게 아동수당을 지급했다. 2013년부터 보수당 정부는 재정의 제약을 이유로 연간 5만 파운드 이상의 고소득 가구에 대해서는 아동수당을 세금으로 환수하는 정책을 쓰고 있다.

유럽 국가들은 모두 아동수당을 도입했다. 국가에 따라 16세 또는 18세 미만까지 월 15~25만 원을 지급하고 있다. OECD 국가 중에서는 미국, 멕시코, 터키, 그리고 우리나라만 아동수당이 없다. 현재 세계적으로 92개 국가에서 아동수당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지금 저출산 문제가 매우 심각한데, 이렇게 된 데는 아동수당이 없다는 사실도 한몫을 했다. 아동수당은 보육과 함께 ‘육아 부담’을 덜어줌으로써 출산율을 높이는 기본적인 제도인데, 우리나라는 아동수당 제도가 아예 없고 보육은 질이 낮다는 문제가 있다.

지난 18대 국회에서 양승조 의원 등이 아동수당 관련 법안 4건을 발의했는데 상임위에서 논의도 안 된 채 무산되었다. 그런데 이번 20대 국회에서는 대선을 앞두고 아동수당에 대한 관심이 비교적 높다. 박광온 의원이 발의한 아동수당법은 2018년 기준으로 연간 약 15조 원이 드는 정책이다. 0~2세에게 월 10만 원, 3~5세에게 20만 원, 6~12세에게는 30만 원을 지급하되, 지급대상을 연소득 1억3천만 원 이하 가구로 제한했다. 이렇게 하면 소득 상위 6.8%를 제외한 554만 명의 아동이 아동수당을 받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보편적 복지라고 할 수 있다. 다른 야당들도 아동수당 제도의 도입에 우호적이다.

아동수당은 출산율 제고의 기초이자 효과적인 재분배 전략이다

유일호 기획재정부 장관은 “아동수당, 잘못 도입하면 효과도 없이 돈만 낭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즉, 아동수당의 출산율 제고 효과가 별로 없을 수도 있다는 것 때문에 경제 부처는 아동수당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분명한 사실은 아동수당 제도만 가지고는 출산율의 제고가 어렵겠지만, 아동수당 없는 출산율 제고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조치가 바로 아동수당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아동수당은 아동 빈곤을 예방하고 아동의 인권을 증진하는 아동에 대한 선제적 투자이자 효과적인 재분배 전략이다.

이에 더해, 아동수당은 가계의 가처분소득을 증가시켜 내수를 진작시키는 중요한 경제 정책의 하나이다. 가령, 아동수당 제도의 도입으로 연간 15조 원을 투자하면 생산유발효과는 약 38조 원이나 되며, 약 34만 명의 고용이 직·간접적으로 창출되는 경제 효과가 있다고 한다.

다행스럽게도 주요 대선 후보들이 아동수당 제도의 도입에 대해 대체로 우호적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반드시 틀어쥐어야 할 중요한 원칙이 하나 있다. 바로 보편주의 원칙을 지키는 아동수당 제도가 그것이다. 사단법인 복지국가소사이어티는 ‘역동적 복지국가’의 보편적 소득보장 정책의 하나인 아동수당으로 중학생인 만 15세까지 월 15만 원씩을 모두에게 지급하자는 방안을 제안하고 있다. 이 경우, 770만 명을 대상으로 연간 약 14조 원이 든다. 재정적 여건 때문에 당장 이것이 어렵다면 차선책으로 만 6세 미만의 아동 모두에게 월 15만 원씩 지급하면 된다. 이 경우에는 274만 명에게 연간 약 5조 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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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행복한 나라’를 공약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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